모든 스포츠 종목은 경쟁이 있기에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축구 역시 서로간의 경쟁으로 그라운드가 달아 오른다. 1930년 우루과이에서 초대 월드컵이 개최된 이래 월드컵은 수없이 많은 화제를 만들어냈고, 이것은 지구촌 사람들을 축구에 열광하게 했다.
월드컵의 탄생과 유럽의 자존심
1900년대 초까지 국제적 규모의 축구대회는 올림픽에서 축구 종목밖에 없었다.
그리고 올림픽경기에는 프로선수들이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세계축구 챔피언을 가리는 대회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국제축구연맹(FIFA) 은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진정한 세계축구선수권대회를 만들고자 논의했다.
1905년 초대 FIFA 회장인 로베르 게렝이 월드컵 개최안을 가장 먼저 주장했는데 이것이 통과되는 데는 15년이란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교통이 상당히 불편하여 국경을 넘는 일이 드믈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을 구성하는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15년간 미뤄오던 월드컵 개최안은 1920년 안트워프에서 열린 FIFA 총회를 통해 겨우 통과되었고, 1924년 파리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이 대회의 공식명칭을 월드컵으로 확정지었으며 1929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FIFA 총회를 통해 1930년 우루과이에서 초대 월드컵을 개최한다는 사항이 통과되었다.
우루과이는 당시 1924년과 1928년 올림픽 축구를 석권한 세계 축구 회강국이었고, 그들은 참가팀의 여비를 모두 부담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으며, 7만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센테나리오 스타디움을 건설하는 등 월드컵 개최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당시 우루과이는 스포츠에 많은 투자를 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1930년이 우루과이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라서 FIFA 는 주저하지 않고 월드컵 개최지를 우루과이로 정했다.
이와 같이 월드컵이라는 세계최고의 스포츠 경기 대회가 만들어졌고, 각종 과학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월드컵대회를 해외스포츠중계를 통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초대 월드컵의 운영은 그다지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1930년 제 1회 우루과이 월드컵 대회의 참가신청 마감일까지 유럽축구 팀의 신청서가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 축구의 중심이라 자부하는 유럽이 왜 월드컵이라는 최고권위의 축구대회에 단 한 팀도 참가하지 않으려 했을까 ? 이유는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이 아닌 남미의 오지에서 그것도 첫 번째 월드컵이 열린다는 것 때문이었다.
유럽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스포츠 정신을 망각한 처사이다
이에 대해 개최국인 우루과이 역시 격분하여 “유럽의 무성의한 태도에 실망했다. FIFA 를 탈퇴해 남미만의 독자적인 협회를 만들겠다.” 며 유럽의 불성실한 태도에 반발했다.
월드컵 개최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일어난 이사태에 대해 가장 난감한 입장에 몰린 사람이 바로 월드컵 대회를 주선한 FIFA 회장 줄 리메 였다.
월드컵이 무산 위기에 몰리자 줄 리메는 자신의 고국인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을 돌며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며 설득 작전에 돌입했다.
줄리 메의 헌신적인 노력은 유럽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그러나 월드컵 무대에 발을 내딛은 유럽팀은 프랑스를 비롯해 총 4개국에 불과했다.
그리고 스포츠 강국임과 동시에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가 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축구를 만든 자신들이 세계 최강이기 때문에 월드컵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많은 세계적 강호들의 불참으로 인해 제1회 월드컵 대회는 다소 초라한 분위기에서 그 막을 올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