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더 나은 인가이 되는 연습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에버딘에서 던디로 내려가던중 창밖으로 그림 같은 풍광이 나타났다.
제주의 섭지코지처럼 깎아지른 절벽 위 비탈진 벌판에 눈부시게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야수파의 대가 앙리 마티스도 표현하지 못할 초록과 파랑의 강렬한 대비였다.
이런 곳에 골프장을 만들면 얼마나 멋질까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펄럭이는 깃발이 보였다. 골프장 이었다. 차를 돌렸다.
코스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는데 입구에 들어서자 웬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림 엽서 같은 멋진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18번 홀 그린 옆에 있는 성당의 잔해와 공동묘지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해 보이는 비탈을 타고 내려가다 순식간에 낭떠러지 바다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위태로우면서도 허무한 코스 때문인 듯 했다.
절벽은 너무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들이 뛰어내린다는 부산 태종대의 자살바위가 연상되었다. 길게 뻗어나간 초원이 뚝 끊어지는 순간, 그 종착지에서 다시 파란 창공이 나타나고 또 바다가 시작됐다.
삶과 죽음의 모습이 이곳에 있었다.
날카롭게 돌출된 곶 끝의 그린으로 골퍼들이 캐디백을 메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사람들처럼 영적 이었다.
어깨에 멘 캐디백을 내려놓고 바다와 맞닿은 그린에 오른 그들의 모습은 삶의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천국의 골퍼들로 보였다.
골프장의 이름은 ‘ 스톤 헤이븐 ‘ 돌의 안식처 라는 뜻이다
흰 옷을 입은 꼬마들이 클럽하우스 앞 연습 그린에서 퍼팅 놀이를 하고 있었다. 스톤 헤이븐은 1888년에 세워진 오래된 골프장이다. 경치가 워낙 아름다워서 ‘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경치 좋은 코스’ 에 단골로 꼽힌다고 한다.
경사지라 코스 어디에서나 아찔한 낭떠러지를 느낄 수 있다. 아담한 도시 스톤헤이븐의 원경과 가끔씩 지나가는 기차는 코스의 감성을 풍부하게 해준다.
120년도 넘은 코스라 이런저런 역사도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코스의 모양은 공구 스패너의 헤드 같다. 1번홀과 5번홀 그린이 바다 쪽으로 돌출된 곶 끝에 있다. 이 뾰족한 땅끝을 향해 샷을 하는 골퍼들의 모습은 영원을 향해 샷을 하는 인상을 주었다
라운드를 마치고 돌아오는 골퍼들에게 물어보니 바다 때문에 1번과 5번 홀 그린으로의 어프로치샷은 매우 떨린다고 한다.
석가모니는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했다. 본질적으로 골퍼는 허점 투성이다. 아무리 뛰어난 골퍼도 자주 나쁜 샷을 친다. 잭 니클로스도 ” 골프는 실수의 게임이다 ” 라고 말한다.
그런 불완전한 골퍼들에게 저 찬란한 청색 물결은 벌타의 바다일 뿐이다.
2번 홀에는 ‘ 히틀러의 벙커 ‘ 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을 폭격하고 돌아가던 독일 비행기가 이곳에 폭탄을 떨어뜨려 생겼다. 독일 전투기의 파일럿은 연료가 모자라 짐을 줄이려 폭탄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과 골프 코스는 관계가 많다. 스톤헤이븐에서 멀지 않은 몬트로스와 포우풋에도 폭탕의 상처가 벙커로 남았다.
전쟁중에 많은 코스들은 그린을 시커먼 아스팔트로 뒤덥고 공군 비행장으로 사용했다. 굉음을 내며 누군가를 죽이러 떠나는 전투기들이 골프장의 주인 이었다.
영국의 몇몇 클럽에는 ‘ 경기 중 권총이나 포 사격이 있을 경우 플레이어는 경기 중단에 대한 페널티 없이 몸을 숨길 수 있다 ‘ 는 로컬룰이 남아있다.
적군의 공격으로 볼이 움직이면 다시 그 자리에 놓을 수 있고, 불발탄이 발견될 경우 이것이 폭발해도 안전하다고 여겨질 지점에 드롭할 수 있다는 룰도 있다.
이 룰들은 사문화 되었지만 언제 다시 살아날지 알 수 없다.
초기의 골프 룰에는 솔저즈 라인 이라는 말이 나온다. 군인들이 훈련용으로 판 참호를 일컫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중 피폐해진 세인트 앤드루스의 코스들은 전후 독일군 포로들에 의해 다듬어졌다. 포로들은 1948년 디 오픈 챔피언십을 앞두고 대회가 열릴 뮤어필드 골프장의 정비를 명령 받았다. 그들은 노임을 더 달라며 파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